반응형
📌 금본위제란 무엇인가요?
금본위제(gold standard)는 자국 화폐 가치를 일정량의 금(金)과 연동하여 통화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제도입니다.
이 제도 하에서는 중앙은행이 금으로 언제든 화폐를 교환해 주어야 했습니다.
📆 1931년, 영국이 금본위제를 포기한 이유
- 1925년 금본위제 복귀의 실책
- 전쟁 전 환율(£1 = US$4.86)을 회복하기 위해 1925년 복귀했지만, 과도한 가치 고정으로 수출 경쟁력 악화
- 스털링 위기(Sterling Crisis)의 본격화
- 1931년 중앙유럽의 은행 붕괴(오스트리아·독일) → 투자자들의 공황 매도
- 영국 은행의 금보유고가 급감하고, 투기적 공격(speculative attack)에 직면
- 경제 불황과 예산 압박
- 대공황 충격으로 수출 급감·실업률 상승 → 재정적자 확대
- 균형 예산을 고집하려던 정부 재정 정책이 지속 불가능해짐
- 금 보유고 고갈 및 통화 유연성 필요
- 금 교환 요구 급증으로 금 보유고 소진
- 통화팽창 및 금리 인하를 통한 경기 부양이 불가능해지자, 금본위제를 떠날 수밖에 없었음
💥 주요 타임라인
날짜사건
1925년 4월 | 금본위제 복귀 (Churchill 장관 주도, pre-war 환율 고정) |
1931년 7월 | 독일·오스트리아, 금본위제 이탈(은행 위기) |
1931년 9월 19일 | 스털링에 대한 투기적 매도 가속화 → 금본위제 포기 결정 |
1931년 9월 21일 | 공식적으로 금본위제 포기 선언, 스털링 25% 평가절하 |
🌍 포기가 남긴 영향
- **스털링 평가절하(약 25%)**로 수출 경쟁력 회복
- 통화정책 자율성 확보: 금리 인하·통화 팽창 가능
- 국제금융체제 변화 촉발: 주요국들이 잇달아 금본위제 포기
- 경제 회복 조기화: 1933년 이전에 경기 반등 조짐
✅ 마무리 정리 요약
- 영국은 1931년 9월, 스털링 위기와 금 보유고 고갈 속에서 금본위제를 공식 포기했습니다.
- 복귀 실패(1925년), 대공황, 투기적 공격이 포기 결정의 주요 배경이었습니다.
- 포기로 통화정책의 자율성을 확보하고 수출 경쟁력을 회복했으며, 이는 글로벌 경제 체제 전환의 시발점이 되었습니다.
💬 자주 묻는 질문 (FAQ)
Q1. 영국은 왜 1925년에 금본위제로 복귀했나요?
- 전후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고, 전쟁 전의 경제 안정 상태를 되찾기 위함이었습니다. 하지만 지나치게 높은 환율 고정이 수출 위축을 초래했죠.
Q2. 금본위제 포기로 즉각 어떤 변화가 생겼나요?
- 스털링화 가치가 즉시 약 25% 하락하고, 금리 인하와 통화팽창 정책이 가능해져 경기 회복이 가속화되었습니다.
Q3. 포기 결정은 누가 내렸나요?
- 당시 맥도날드(MacDonald) 내각 산하 국무재무부와 은행 감독 기관인 영란은행(Bank of England)이 공동으로 결정했습니다.
Q4. 금본위제 포기가 글로벌 경제에 미친 의미는?
- 영국을 시작으로 주요 이머징 국가들도 금본위제를 포기하며, 국제 통화 체제의 전환점을 마련했습니다.
반응형
'1930년대 세계 경제 이야기 > 요런저런 세계 이야기' 카테고리의 다른 글
1933년 뉴딜(New Deal)정책 정리 (3) | 2025.05.08 |
---|---|
1932년 미국대통령 프랭클린 D. 루즈벨트 당선 정리 (34) | 2025.05.07 |
1932년 나치당의 부상 정리 (2) | 2025.05.07 |
1931년 오스트리아 크레디트안슈탈트(Creditanstalt) 은행 파산 정리 (3) | 2025.05.07 |
1930년 스무트-홀리 관세법(Smoot-Hawley Tariff Act) 정리 (5) | 2025.05.07 |